[2막:가을] 토끼 고기와 풀네임

 

링샹옌

귀엽네. (산 속으로 도망치는 토끼를 보며)

아이기 아이토

자존심 세네

링샹옌

뭐.

아이기 아이토

솔직하게 귀엽다고 하면 편할 텐데 소년

링샹옌

귀엽다고 듣고싶어?

아이기 아이토

내가 원래 좀 관종이야 (독한것)

링샹옌

(독한것…) 귀엽네.

아이기 아이토

후후하하하하하하하하!!!

링샹옌

(하나도 안 귀여운 웃음)

아이기 아이토

너도 내가 갑자기 애교 떨면 인생이 힘들어지잖니

링샹옌

아… 갑자기 좀 힘드네.

아이기 아이토

솔직하게 살렴

링샹옌

아니 이 학교에 나만큼 솔직한 인간이 어딨어.

아이기 아이토

“「귀엽네.」 피노키오가 산 속으로 깡총깡총 뛰어가는 토끼를 보며 말했어요.” (동화 읽음)

링샹옌

옆에서 건방 떨던 토끼가 잡아먹혔다는 얘기는 없냐?

아이기 아이토

아무래도 피노키오가 토끼를 먹기는 어려운 거겠지…

링샹옌

빨리 인간 소년 되어야겠다.

아이기 아이토

토끼 먹을 거야?

링샹옌

끓여먹으면 맛있어.

아이기 아이토

오~ 팽형? 중국인 아니랄까봐 아이디어가 기발하네. (진짜… 아이기 아이토나 하는 생각임)

링샹옌

아니, 진짜로 토끼는 끓여 먹는 편이 더 맛있다고. 먹을 일 생기면 참고해.

아이기 아이토

잡아왔어

아이기 아이토

링샹옌

나보고 도축을 하라고? 미쳤니.

아이기 아이토

어머. 도축해올까?

링샹옌

……누가 할 건데.

아이기 아이토

시내 나가면 정육점 하나쯤 있지 않으려나?

링샹옌

… ( @dice_kirameki [YN] )

관객의 환호성

🌟[NO~~~]

링샹옌

빨리 놓아줘.

아이기 아이토

나 원 참, 끓여 먹으면 맛있다더니? (뻔뻔) 근데 산에서 잡아왔는데 길에 풀어줘도 돼?

링샹옌

…산에 놓아줘. 잘 살던 애를 왜 잡아와. 아니. 누가 잡았어. 넌 못 잡잖아.

아이기 아이토

네가 끓여 먹으면 맛있다길래? (또 퍼스널 스페이스 침범해서 상대 끌고 가며) 당연히 내가 안 잡았지. 그러니 풀어주러 함께 가자꾸나.

링샹옌

평범하게 사오면 되잖아. (이젠 이 짓도 익숙해졌는지 불평도 없다. 숲이 어디였지. 온천 뒤인가. 슬슬 길가의 가로등 빛이 멀어진다.)

아이기 아이토

진짜 토끼 들고 오면 네 표정 재밌을 것 같아서. (당당하게 뻔뻔한 소리. 인파가 흘리는 소음이 사그라지며 점차 풀내음이 가까워진다.) 되게 얌전하지?

링샹옌

재밌었냐? (발치에서 종종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낙엽이 여기까지 날려 온 탓이다. 그 말에 아이토가 들고 있을 토끼를 본다.)

아이기 아이토

“이런 미친.” 하는 팔척이는 드물게 기억에 소장할 가치가 있었지. (숲으로 들어설수록 점차 주위가 어두워졌으므로 뭐라도 켜보라는 손짓이 뒤따랐다. 토끼는… 대단히 겁먹었는지 얌전히 귀를 잡힌 채다.)

링샹옌

욕하는 거 기억해서 뭐가 좋다고… (손짓에 핸드폰 라이트를 켠다. 발 밑을 넓게 비추도록 조금 높게 들었다.) 불쌍한 놈. 겁먹었네.

아이기 아이토

반응이 재밌잖아. (돌부리를 피해 걷느라 시선이 아래로 꺼졌다. 오르막길이 나올 즈음,) 튈까봐 냅다 겁줬거든. 어디 보자, 여기 근처랬는데…

링샹옌

그래. 재미라도 있으니 상대를 해주시는군. (시간이 갈수록 어두워질 뿐인데, 상황이 상황이니 자연스레 보폭이 맞춰진다. 지형이 바뀌자 자리에서 멈춰 주위를 둘러본다. 곧 자그마한 둔덕 밑의 구멍을 빛으로 가리키며,) 저기.

아이기 아이토

요샌 네가 제일 재밌더라. (농담인지 진담인지. 곧 구멍을 발견하자 치맛자락이 엉망이 되든말든 개의치 않고 대번에 앉는다. 굴 근처에 놓아주며) 얘, 저 강시가 너 살려준 거란다. 죽으면 은혜 갚으렴~ (금세 굴로 도망치는 토끼.)

링샹옌

(날… 강시라고 불렀어?)
(팔척이가 아니라?)
(…)
(역시 곧 죽으려는 건가.)

링샹옌

아이기 아이토

귀신이라도 본 것 같네

아이기 아이토

링샹옌

(다시봐도 어이없네.) 내 별명이 바뀌었길래.

아이기 아이토

(극사실주의) 어머, 팔척이보다 강시가 마음에 들어? 바꿔줄까?

링샹옌

이름으로 부르는 게 제일 마음에 든다고. (또 말함 또) 어쨌든 내 컨셉이 그거잖아. 이런 산길에서, 콩콩 뛰어 내려오는 시체. (겁먹지 않을 인간 상대로 목소리를 깔아본다.)

아이기 아이토

난 좋아하는 애들만 이름으로 부른다니까? 내가 좋아해줬으면 좋겠니? (또 또 말함 또 또) 어머, 너 목소리 까는 쪽이 더 근사하네. (막 웃음)

링샹옌

…난 왜 자꾸 결과를 알면서 말을 할까? (그러니까 두가지 상황 모두.) 일어나기나 해. 치마에 벌레 붙는다.

아이기 아이토

발화에는 늘 의도가 있다던데. 내가 좋아해줬으면 좋겠냐고 되묻는 건 얼탱이가 없지만 이름은 불러줬으면 싶은 거 아닐까나? (짓궂은 소리나 덧붙여놓고) 아이 참, 잡으면 되지.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흙투성이가 된 치마를 털어낸다.)

링샹옌

그냥 감정 없이 불러주면 되잖아. 오히려 별명을 하나하나 정하는 쪽이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데, 나는. (재킷을 벗어 건네고, 다시 앞장세우듯 가만 서있는다.)

아이기 아이토

결코 선 안에 들이지 않겠다는 선언 같은 거지. 내가 이런 데 은근히 강박적이거든. (사양하는 법 없이 겉옷을 받아들었다. 앞치마 마냥 제 골반에 묶으며) 그래도, 뭐. 너한텐 이미 변덕 잔뜩 부려뒀으니 별 수 없나. (곧 출발은커녕 숙여보라는 듯한 손짓이 뒤따른다. 당신이 몸을 숙였든, 그렇지 않든 개의치 않고 짓궂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다.) “링샹옌씨. 풀네임 불리는 걸 좋아하신다면서요?” (애같은 웃음이 어두운 숲을 울린다.)

링샹옌

(하여튼 일본에 도착한 이후 참 많은 방식으로 불렸다. 다섯 살 난 어린이처럼 부르거나, 멋대로 성을 빼기도 하고. 웬 이상한 별명도 포함하여 자신은 그것이 너무 ‘가깝다’ 고 생각했다. 거리감을 모르는 녀석들. 멋대로 정도 이상으로 친해져 온다. 그러니 언제나 한 조각 의심을 떨칠 수 없게 하는 너에게는 항상 요구해왔다. 너는 나를 위한 별명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라. 몸을 수그린다. 그리고, 서로 어긋난 의미의 승리를 아주 잠시 만끽한다.)

링샹옌

아이기 아이토

(비죽 웃는 얼굴을 올려다 본다. 마지못해 웃는 낯은 이따금 볼 수 있었다지만 만끽하는 모양새는 처음이다 싶었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통제광. 호시탐탐 의심하느라 도리어 제 발로 거리를 좁히는 줄 모르는 게 분명하다. 다만 덩달아 변덕을 부리게 된 건 사실이었으므로,) 되게 좋아하네.

아이기 아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