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봄] 개초딩 싸움과 타이타닉

 

링샹옌

죽으라고 고사 그만 지내라고.

아이기 아이토

 

링샹옌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세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에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 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부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고
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이기 아이토

할렐루야. (무교)

링샹옌

나무아미타불.

아이기 아이토

아멘.

링샹옌

좀 져달라고.

아이기 아이토

내가 지면 네 마음 약해질까봐 배려해주는 거란다.

링샹옌

진짜 독하게 마음 먹고 살게.

아이기 아이토

내가 갑자기 8중 추돌 사고가 나서 울면서 쳐다봐도 놓고갈 수 있어?

링샹옌

니 몸으로는 8중 추돌 사고 나면 진짜 죽어.

아이기 아이토

어머, 처녀귀신이었나보네.

링샹옌

처녀귀신이면 주워줘야지……

아이기 아이토

퇴마하려구?

링샹옌

성불 시킬 거야. 성불.

아이기 아이토

퇴마랑 뭐가 다르담.

링샹옌

원한이 있으면 풀어주는 게 성불이잖아. 퇴마는 그냥 강제 퇴거 신청이고. 어쨌든 마지막 소원은 이루게 해주니까 좋은 거 아냐?

아이기 아이토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 소원 없는 귀신은 어떻게 돼?

링샹옌

소원 없는 귀신? 그런 게 어디 있어. 뭔가 잘못됐으니 현세에 남았겠지. 넌 호상 한 인간이 들러붙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

아이기 아이토

흐흥, 그럼 난 죽어도 귀신은 안 되겠네~

링샹옌

너 없어도 킹덤컴이 1위가 되는 건 기정 사실이다? 미련이 없다?

아이기 아이토

당연히 기정 사실이지? (갸웃?) 난 졸업하고 우리 애들 기다릴 요량인데. 어머, 혹시 내가 졸업하자마자 죽었으면 좋겠니? (극단적인 예시를 드는 못된 습관)

링샹옌

아니, 누가 그렇게 말했냐고. (황당…) 너무 자신감에 차있어서 어이없었던 것 뿐이야.

아이기 아이토

흐흥. 물론 나 자신감 넘치는 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킹덤컴의 우승은 기정사실이란다~

링샹옌

만에 하나 못하면? 만약의 만약으로 가정을 해보자고.

아이기 아이토

패배를 상정하는 패왕이 어디에 있담?

링샹옌

항우가 그렇게 살다 자결한 건 알지?

아이기 아이토

그치만 난 항우처럼 멍청하지 않은걸~

링샹옌

너랑 그 인간의 차이가 뭐야. 내가 보기엔 비슷한데.

아이기 아이토

내가 쥔 패가 훨씬 많다.

링샹옌

만인지적 패왕인 항우보다 네 패가 더 많다고? (갑자기 초딩 싸움 됨.)

아이기 아이토

나라면 한신 설득했을 듯

링샹옌

어떻게? 그 인간도 제정신은 아니던데. 비이성적인 사람을 네가 설득한다고.

아이기 아이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제정신 아니니깐.

링샹옌

…됐다. (초딩 싸움에서 짐.) 제정신 아닌게 뭐 자랑이냐.

아이기 아이토

흐흥. (초딩 싸움에서 이김.) 제정신 아니면 얼마나 편한데?

링샹옌

너 정신 멀쩡했을 때가 궁금하다. 언제야? 한 5살?

아이기 아이토

그때의 난 정말 귀여웠었지…

링샹옌

지금은 왜 안귀여워.

아이기 아이토

혹시 미감이 좀 떨어지는 편?

링샹옌

미인과 귀여움은 별개의 카테고리지.

아이기 아이토

난 미인이고 귀여운데?

링샹옌

미인이지만 귀엽진 않아. 귀여운 건 이치시마 히사, 미모리 코이카 같은 애들을 말하는 거고.

아이기 아이토

이렇게 미감이 떨어져서 어떻게 아이돌 하려고 이런담.

링샹옌

내가 기획 하냐? 프로듀서가 하지. 아니, 좀 물어보자. 네 어디가 귀여운데. 구체적으로 말해봐.

아이기 아이토

말해봐야 네가 이해나 하겠니. (절레절레) 내가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줄게.

링샹옌

아니? 그래도 말해봐. 네 입으로 말해보라고.

아이기 아이토

귀엽다는 건 작고 세밀하면서 균형이 갖추어져 보기 좋은 상태에 있다는 뜻이란다.

링샹옌

네 다리는 대칭이 아니라 균형이 안 맞는데?

아이기 아이토

거봐, 내가 말했지. ‘말해봐야 네가 이해나 하겠니’.

링샹옌

제대로 이해했잖아.

아이기 아이토

(갑자기 여기 하고 싶은 대답 생각났는데 너무 못돼처먹어서 한 번 고민하는 자리)

링샹옌

(다섯시간 뒤에 찾아올테니 그동안 생각해봐)

아이기 아이토

(스레드 켬) @story_kirameki

날아오르자, 빛을 향해서!

🌟아이기 아이토가 너무 귀여워서 밟혀죽고 싶다는 스레드가 범람합니다. 니가 틀린듯?

링샹옌

[미친놈]

아이기 아이토

이게 하고 싶어서 원래 쉬는 시간인데 달렸어

링샹옌

애초에 귀여운 애한테 왜 밟혀 죽고 싶은데. (토도도독)

아이기 아이토

원래 아이돌 좋아하는 사람은 음습한 면이 있어. (키배 뜨는 거 구경함)

링샹옌

할 일 없는 녀석들… (아이돌로서 할 발화는 아님. [아이기 아이토가 니를 왜 밟니 ■■아])

아이기 아이토

아 그게 문제?

링샹옌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지. 근데 이런 식으로 말해야 먹히거든.

아이기 아이토

좀 배웠나보네? 생긴 건 순 기계치일 것 같은데.

링샹옌

기계랑 이건… 됐다. 인터넷 공부 좀 했지.

아이기 아이토

너희 리더가 너무 못해서? 유닛원 중 한 명쯤 곧잘 다루는 사람 필요하긴 해.

링샹옌

어.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할 것 같아서. 너희는 누가 하는데. 너?

아이기 아이토

우린 마미랑 아키라~ 나 사실 휴대폰 아직도 이거 써. (진짜… 뭔 고물 2G폰) 스마트폰도 하나 가지고 있긴 하지만.

링샹옌

이걸 아직도 쓰고 있네… (약간 호감 됨.) 걔넨 좋은 얘기만 쓰지 않아? 이름 다 밝히고. 그런 분야는 우리는 타키가 해.

아이기 아이토

여사님이 선물해주셨거든. 고장날 때까진 쓰지 않을까나. (뻔한 사유) 요컨대 시비 붙을 때마다 키보드 두드리는 게 네 몫이다?

링샹옌

(그리고 그런 사연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쁜 놈이 착한 일 한번 하면 좋아 보인다는 이론 같은 걸로. 어깨가 좀 풀어진다.) 그냥 둘 수도 없잖아.

아이기 아이토

(어릴 땐 여사님 이야기에 물러지는 사람들이 제 밥이긴 했다. 지금은 어땠더라. 상념을 접어두고,) 근본적으로 해결이 안되는데도?

링샹옌

아이돌 생활 하면 평생 들을 말인데 어떻게 해결해.

아이기 아이토

그니깐. 해결도 안 되는데 들이받는다는 거잖아. 너는.

링샹옌

난 인터넷에서 안 싸워. 재활용 하려는 거지.

아이기 아이토

흠? 무슨 재활용?

링샹옌

어쨌든 이것도 관심이니까… 어차피 대단한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즐겁다 이거잖아? ‘햐쿠가타에게 좋은 말을 하는 게 쿨하다’ 고 생각하게 만들면 되지. (말 길어짐.)

아이기 아이토

임하는 너는 전혀 안 쿨한 것 같은데. (키득거린다.) 넌 심드렁한 것치고는 열심이더라.

링샹옌

내가 쿨해서 뭐하는데. (웃는 소리에 눈을 째고 본다.) 난 심드렁한 적 없어. 항상 최선을 다 한다고.

아이기 아이토

흐흥, 그럼 이건 궁금한 건데. 재밌어? 최선을 다하는 거, 무대 서는 거, 아이돌 하는 거.

링샹옌

재미 없어. 재미 없고, 재미 없어. 재미는 놀 때나 찾는 거고. 넌 재밌어서 하냐? 이거.

아이기 아이토

재미 없다니 다행이네. 재밌다고 했으면 질투났을 뻔~

링샹옌

그래. 너도 열심히 해. 그래야 내가 보고 너도 저렇게 사는데, 하지.

아이기 아이토

나야 열심히 하지~ 영 재미는 없지만 좋아하거든. 우리 애들 근사하게 전시하는 거.

링샹옌

프로듀서 하는 게 나았던 거 아냐?

아이기 아이토

아이 참, 그래서야 애들이 나만 놓고 가는 기분이잖니.

링샹옌

보통 왕이 직접 출격하진 않지.

아이기 아이토

나는 기사왕을 좋아하거든~

링샹옌

…그런 게 멋있긴 해. (순순히 인정.) 켈트 신화 좋아해?

아이기 아이토

그렇다니까. (인정하는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 비죽 웃음.) 응. 난 기본적으로 싸움 잘 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대제보단 기사왕 전설이 좋더라.

링샹옌

그래서 다른 애들도 다 기사인가… 넌 요즘 시대에 살아서 천만다행이다. 과거의 귀족집 여식으로 태어나기라도 했으면 악취미로 역사서에 이름이 올랐을 걸.

아이기 아이토

응. 킹덤컴은 내 취향으로 범벅을 해놓은 유닛이란다. (으스대다가도,) 옛날에 났으면 귀족집에서 태어났으려나~ 난 똑똑해서 기요틴은 안 당했을 듯.

링샹옌

걔넨 바보라서 당했고? 이놈 저놈 다 끌어다 쳤는데 넌 어떻게 빠져나가게. 들어나 보자.

아이기 아이토

(개초딩싸움 중세버전인가 이거) 중세면 더 편하지 않나. 절대 안 지면 되잖아.

링샹옌

(아… 미안하다 자꾸 초딩 싸움 걸어서) 너 칼싸움 잘해?

아이기 아이토

(내 본질? 이 개초딩이라 괜찮은듯) 난 안목이 좋고 충심을 곧잘 사서 내 기사들이 잘해줄 듯.

링샹옌

(그래… 촏잉 대화나 해) 너 기사 넷밖에 없잖아.

아이기 아이토

중세에선 더 데려오겠지? 우리 애들 부하로.

링샹옌

그니까 너네 애들이 백부장 같은 거다? 밑에 애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떡할건데.

아이기 아이토

난 쌀에 흙 섞는 짓은 안할 거라서 그럴 일은 없을듯. (진짜… 개초딩싸움)

링샹옌

그건 어느 나라 역사냐?

아이기 아이토

동아시아인 건 확실한데.

링샹옌

맞아? 꽤 근처였네. 일단 우린 아닌데.

아이기 아이토

중국인 척 해둘까? (뭘?)

링샹옌

(잠시 생각) 그래. 나라가 몇 번을 망했다 생겼다 하는데 그 중 하나였겠지. 넌 어디서 태어날래?

아이기 아이토

그치그치. (뭐가 그치그치임) 근데 난 북유럽이 좋아. (미친…)

링샹옌

(뭐가 그치야) 이게 인종을 널뛰기하네. 뭐, 어디. 핀란드?

아이기 아이토

브리튼이 좋겠어. (진짜… 투명함)

링샹옌

알겠다. 니 취향.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아이기 아이토

(따끈따끈한 팔척이 초밥 구경하며…) 아서왕. (뻔한 대답)

링샹옌

(식었어) 그러니까 넌 네가 제일 좋다?

아이기 아이토

아~ 그런 의도의 질문이었군. 원탁에 앉은 기사들 사이에선 고민이 좀 필요해.

링샹옌

난 모르간. (기사조차 아님.)

아이기 아이토

취향 심하다. 기사도 아닌데. (이딴 소리나 해놓고) 기사 중에서 고르라면 랜슬롯.

링샹옌

랜슬롯? 아서왕의 배신자 아니야? 네 취향이 더 심하잖아.

아이기 아이토

사랑했다는데 별 수 있겠니~ 뭐, 이건 반쯤 농담이고. 싸움을 제일 잘 하잖아. (진담이 더 농담같음)

링샹옌

농담이지? (진짜야) 싸움 잘해서 동료들까지 다 죽였는데?

아이기 아이토

우리 애로는 곤란하지만, 기사로는 간지나는 듯.

링샹옌

그러다 눈 멀어서 등에 칼 맞는 거야. (시비.)

아이기 아이토

왜, 좋아하면 칼 좀 맞아줄 수도 있지. (뻔뻔)

링샹옌

네 좋아함은 제정신이 아니다.

아이기 아이토

네가 뭘 알겠니 (또 시작)

링샹옌

왜 또 ■■ 취급 하냐고. (또 이럼) 좋아하는 사람이 칼로 찌르면 싫어져야지.

아이기 아이토

네가 이해를 1또 못하니까 그렇지~ (또 또 시작) 어머, 그치만 내가 좋아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싫어한담?

링샹옌

아주 세기의 사랑을 해라, 그냥… 배신 당해도 좋다구나 하고.

아이기 아이토

하고 싶다면 당해줘야지, 뭐. 왜. 넌 배신 당하면 싫어질 것 같아?

링샹옌

당연히 싫지. 좋다 좋다 해줬더니 감히 뒤에서 칼을 꽂아? 죽여버릴 거야.

아이기 아이토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그냥 동화책에 나온 글 읽는 거임)

링샹옌

야. 나 두고 뭐 봐. 내가 사랑하면 걔도 고맙구나 해야지.

아이기 아이토

어쩐지 너 생각나서 그만. (동화책 덮으며) 어우, 심해. 내가 너 안 좋아해서 진짜 다행이다.

링샹옌

너도 충분히 이상하거든? 어이없네. 너 로맨스 영화 본 적 있어? 거기서 누가 칼에 찔리냐고.

아이기 아이토

《타이타닉》에서 잭은 로즈 대신 죽던데?

링샹옌

그건 잭이 희생한 거지. 로즈가 죽으라고 등떠민 게 아니잖아.

아이기 아이토

로즈가 꼭 그래야 한다고 잭 찌르면 안 찔려주려나?

링샹옌

아니… (반박하려다 잠시 기억을 되짚음.) 시청각실 갈래?

아이기 아이토

가물가물할 땐 한 번 봐두면 좋지, 뭐. 가보자~ (여전히 퍼스널 스페이스 침범이 제멋대로인 여자였으므로 서슴없이 당신의 손을 붙잡아 당긴다.)

링샹옌

(이게 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그냥 두었다. 자기보다 머리 두 개는 작은 여자랑 싸워서 뭐 할 거며, 이끌고 싶은 것 같으니 보폭이나 맞춰 걸었다. 어두운 스크린관의 전등을 켠다.) 어딨어? 타이타닉.

아이기 아이토

(전등을 켤 즈음 놓아주는 손이며, 만면에 띤 짓궂은 낯은 당신이 참아줬음을 아는 게 뻔하다.) 얼마 전에 봤으니깐…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아, 여기 있다.

링샹옌

재수 없는 녀석. (이젠 이 말도 그저 버릇이다. CD를 받아 플레이어에 넣고, 빔 프로젝터를 준비한다. 스크린에 검은 화면이 뜨는 것을 확인 하고서야 다시 점등.) 이런 영화가 취향인 줄은 몰랐네.

아이기 아이토

당해주는 네가 바보인 거거든~ (대놓고 놀리는 소리. 적당한 자리로 상대를 끌고 가며) 몰랐니? 내가 좋아하는 영화 세 개 꼽으라면 꼭 들어가.

링샹옌

(작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옆사람을 흘겨본다. 배급사 로고와 함께 나오는 *웅장한 소리* . 정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머지 두 개는?

아이기 아이토

(같은 사이즈의 의자가 맞나… 노골적으로 신기해 하다가도, 부둣가를 떠나는 타이타닉호에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릴 즈음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일단 하나는 총 든 백인이 나와서 전부 때려 부수고 쏴죽이는 영화.

링샹옌

테이큰?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이었다.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다른 잡음을 내진 않았다. 집중을 하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그러나 결국 로즈와 칼이 아침을 함께 보내는 장면에서 혀를 찬다.)

아이기 아이토

어머, 어떻게 알았담. (키득거리는 웃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물결 소리에 섞인다. 좋아하는 영화이긴 했던지 드물게 부산스럽게 굴지 않고 빤히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로즈가 도끼로 잭의 수갑을 내려칠 즈음, “저거 보라니까?” 뻔뻔한 낯으로 상대를 쿡 찌르는 손길이 있다.)

링샹옌

(약 한시간 가량의 침묵. 한창 긴박할 타이밍에 불리자 인상을 찡그리며 옆을 돌아본다. 생각해보니 그런 목적이 있었지. 그런 표정으로.) 아니, 저건 경우가 다르지. (둘밖에 없음에도 영화관에 있는 것처럼 속닥인다.) 잭을 구하려는 거잖아.

아이기 아이토

(인상을 찡그리는 낯에는 한쪽 눈썹만 한 번 들었다 놨다. 키득거리기를 한동안, 덩달아 목소리를 낮춰서) 어쨌든, 로즈가 자기 손목을 잘라도 괜찮다는 거잖아.

링샹옌

사랑하면 등에 칼을 꽂아도 날 위한 것이겠거니 한다는 거야, 아니면 어쨌든 피가 나는 건 똑같으니 같다는 거야.

아이기 아이토

아이 참,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에게는 조건을 걸었잖니? ‘로즈에게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면 찔려주지 않으려나?’

링샹옌

(그 말에 과거의 발언을 되짚는다. 그 사이 탈출을 위해 고군분투 하는 소리, 물이 첨벙이는 소리, 나이가 든 로즈의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그래. 네가 이겼다.

아이기 아이토

(“이제 여러분들이 잭을 알았어요. 나를 구하고, 내 영혼의 자유까지 구한 사람을. 그런데도 사진 한 장 없으니 그 사람은 내게만 존재하는 거예요.” 바닷속으로 목걸이가 가라앉는다. 영화가 점차 끝을 맺는다.) 흐흥, 이번엔 ‘져준 거’ 아니네. 기분 좋아라.

링샹옌

(‘재미있는’ 장면이 끝나도 여전히 대부분의 시선은 스크린에 집중되어 있다. 크레딧이 올라올 때도.) 많이 기뻐해라. 내 자존심 다 구겨지는 동안. 근데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좋다는 거야?

아이기 아이토

난 왜 이렇게 네 자존심 구겨놓는 게 재밌을까나. (농담인지 진담인지. 다리를 번갈아 간들거리다가,) 어머, 넌 안 좋았니?

링샹옌

아니, 나쁘진 않았는데. (화면이 멈추고도 자리에 가만 앉아있는다.) 딱히 좋지도 않아. 화면을 잘 만들었네 싶은 정도.

아이기 아이토

“《타이타닉》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또 사람 옆에 놓고 동화 읽음)

링샹옌

그래서 그 멋진 점이 뭐냐고. (그만 열받게 해)

아이기 아이토

(동화책 덮으며) 잭이 자기 삶을 던지는 거랑, 로즈가 바다에 보석을 던지는 거.

링샹옌

사랑하면 모든 걸 내어줘야 하니까?

아이기 아이토

정답~ (칭찬의 박수) 난 사랑은 영 자신 없는데, 순애는 자신 있거든.

링샹옌

(치우라는 듯 한손을 휘이 내젓고,) 똑같은 말 아닌가. (사전적 의미로 받아들인다.)

아이기 아이토

아이 참, 칭찬해줘도 싫다네. (싫겠지 그럼) 어머? 엄연히 달라. 사랑은 아무래도 내가 못 할 것 같은 거고, 순애는 상대에게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거~

링샹옌

너한테 칭찬 받아서 어디다 쓰냐. 사랑은 뭐길래 못하는데?

아이기 아이토

어머? 난 빈말 안하는 성질머리라서, 내 칭찬 되게 비싼데? (농담 같은 진담) 아이 참, 모르겠으니깐 못 하지.

링샹옌

너 사랑한다는 인간은 없었고?

아이기 아이토

있었지? 참고로 지금 친절하게 안 듣고 발 뺄 기회 주는 거란다.

링샹옌

너희 어머니 말고.

아이기 아이토

얘가 발을 안 빼네. (막 웃다가) 있겠니?

링샹옌

슈레이메나 노노카에와나 에바라 마미는?

아이기 아이토

사랑이랑은 좀 다르지 않나~

링샹옌

다양한 형태가 있으니 뭐든 하나쯤 맞을거란 생각도 안 드나.

아이기 아이토

(그럼 생각은 좀 해보다가,) 그러는 넌 여우 사랑하나…

링샹옌

알았어 그만할게.

아이기 아이토

너와 여우의 관계가 나와 우리 애들의 관계의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늘 유념하도록… (이딴 소리나 함)

링샹옌

아 알았다고. (짜증 고딩 상태 됨.) ……근데 우리 집 관계를 니가 어떻게 알아.

아이기 아이토

대충은 알지? (놀림 고딩 상태) 왜, 너희 여우가 얼굴에 써붙이고 다니잖아. 너희 좋아서 죽겠다고.

링샹옌

걘 진짜… 생긴 건 여우같아선 애가 약아 빠지질 못해. 구밀복검해야 큰 일을 하는데.

아이기 아이토

어린애라서 그래. 뭐, 옆에서 칼춤 추는 팔척 강시 하나 있으니까 어디 가서 보증 서진 않겠지.

링샹옌

아… 내가 뭐 부모도 아니고 무대 바깥 일까지 케어하긴 싫은데.

아이기 아이토

어머, 그럼 만약 여우가 보증 서고 헤헤 웃으면서 돌아오면 어떻게 할 거야?

링샹옌

돈 많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해. 감당 못할 정도면...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싶어 할테니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아이기 아이토

그건 신기하네. 난 우리 애들이 그럴 리도 없겠다만 보증 서서 오면 보증 세운 새끼 죽일 건데.

링샹옌

내가 그만 죽이라고 했어. 걔네(보증 세운 놈)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왜 이래?

아이기 아이토

어쨌든 우리 애들 인생에 방해가 됐으니 죽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