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가을] 플라네타리움 극장

 

링샹옌

이런 일로 사람을 오라 가라 시키다니…

아이기 아이토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링샹옌

별로. 어차피 같은 옷을 입고 정해진 노래를 부를 뿐이잖아.

아이기 아이토

그럼에도 내 무대는 최고일 테니 대단한 기억이 되겠지. (키득거리다가도,) 너 되게 심드렁한 성격이구나?

링샹옌

(아이토의 말대로 링샹옌은 심드렁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까, ‘네가 누군데’ 라는 눈길을.)

아이기 아이토

어머, 이건 무슨 표정이람. 내가 궁금하니?

링샹옌

‘누구길래 이렇게 자신감 넘치지.’ 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이기 아이토

아이기 아이토. 싸가지 없어도 참아. 어차피 곧 졸업하니까. (능청스레 대꾸하고는) 나는 너 알아.

링샹옌

안녕. 아이기 아이토.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았는데 그렇게 덧붙이니 곱게 보이지 않아. 나는 고학년과 연이 없는데?

아이기 아이토

봄에 중국에서 왔잖니? 외국인이야 학교에 아주 드물진 않다지만 전학생은 아무래도 눈에 띄지. 내가 사람들한테 관심이 많거든. (전혀 안 그런 투로)

링샹옌

전혀 그럴 사람으로 안 보여. (그것을 굳이 지적한다.) 아무튼... 그런가. 너는 여기서 6년 내내 재학 중? 좋겠네.

아이기 아이토

요샌 어쩜 이렇게 눈치 빠른 애들이 많은지 몰라. (어깨를 으쓱이고,) 응. 어릴 때부터 다니고 싶었어서. 좋겠다는 건 왜?

링샹옌

다 아는 얼굴일 것 아냐. 학교 주변에 재미있는 것도 많이 알 테고.

아이기 아이토

어느 쪽이 좀 더 좋아 보여? 다 아는 얼굴인 거, 학교 주변에 재밌는 장소를 많이 아는 거.

링샹옌

(잠시 고민하며 앞머리를 옆으로 치운다.) 두번째려나. 주변을 모르면 불편한 점이 참 많아.

아이기 아이토

아하, 플라네타리움 극장은 가봤니? 뒷길로 조금만 새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는데.

링샹옌

아니. 바다 근처에 천체투영관을 세웠다는 얘기야? 말 되는 조합이긴 하네. 한가하면 안내 좀 해줘.

아이기 아이토

이 학원은 근사한 겉치레에 집착하는 면이 있더라고. (앞장서 걷기 시작하며,) 극장이랑 바다 중 어느 쪽? 아니면 둘 다?

링샹옌

둘 다. 너는 학교에만 있을 것 처럼 생겨서 자주 돌아다니는 모양이네. 친구랑?

아이기 아이토

이건 비밀인데, 내가 수업 듣기를 싫어하거든. 땡땡이가 잦아지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거 있지? (쉬운 길을 골라잡아 걷다 보면 곧 플라네타리움 극장에 다다른다.) 딱 저녁에 알맞게 왔네. 낮에는 별로 안 예쁘거든~

링샹옌

(단정해서 스토익한 부분이 무조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 수 없네… 가는 내내 동그란 뒤통수를 바라봤다.) 어차피 실내에서 하는 거 아니었어?

아이기 아이토

(얌전한 얼굴과 그렇지 못한 성질머리… 정문을 열 즈음 뒤돌아본다. 시선을 느껴서인지, 혹은 안내할 요량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홀에 투명한 돔이 있어서, 플라네타리움 극장이라고 부르거든. 밤하늘 구경하기 얼마나 근사한 줄 아니?

링샹옌

(잠시간 눈을 마주하더니, 곧 어깨 너머를 바라본다.) 아, 그러니까 ‘플라네타리움’은 아니었다는 얘기네. 그럼 무대도 없는데 이렇게 들어와도 되는 건가.

아이기 아이토

예술 학교니까 말이지. 근사한 모양새만 따라하는 거야. 이 학교가 겉치레를 그렇게 좋아한단다. (키득거리며 “들어가자.” 손짓한다.) 응. 이 학교에 내가 못 갈 곳이 어디 있겠니. 앗, 해 진다. 얼른 돔으로 가자.

링샹옌

(목적지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옆으로 나란히 서서 걷는다.) 네가 이 학교의 왕이라도 돼?

아이기 아이토

어머, 내 꿈을 기가 막히게 알아챘는걸. 그러엄, 내가 이 학교의 왕이 될 거란다. 그건 그렇고. (서슴없이 상대의 손을 붙잡아 당긴다.) 서둘러야겠어. 이제 제일 예쁠 시간이거든.

아이기 아이토

(뛰는 걸음으로 홀에 다다르거든,)

아이기 아이토

링샹옌

(누군가 이끌어 가는 길은 익숙치 않은지 발걸음의 박자가 어색하다. 복도는 사람이 없음을 증명하듯 고요하고, 바깥의 광원에만 의지하고 있는 무대는 자신이 작게 느껴질 만큼 넓고, 높다. 기하학적 패턴의 철골 사이를 한줄기 은하가 어렴풋하게 가르고 있는 광경을 본다.) …돈 많이 들였네.

아이기 아이토

겉치레를 좋아하는 학교라고 했지? 하지만 이런 건 마음에 들어. 고개를 한껏 들어 천장을 보면 하늘이 내 발 밑에 있는 것 같잖니. (한껏 즐거운 어조로 재잘거리다가,) 이 시간에 제일 근사한 건 나만 아는 비밀이었는데.

링샹옌

(그 말을 따라 고개를 뒤로 꺾는다.) …잘 모르겠어. (분명 서로의 시각이 다른 탓이겠지.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럼 나만 알고 있을게.